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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문(海文)과 인문(人文)의 관계

zoffldlah 2022. 9. 24. 23:21

해문(海文)과 인문(人文)의 관계

. 바다와 인간의 관계

포유류인 인간은 주로 육지를 근거지로 생활하여 왔기 때문에 바다가 인간의 삶에 미친 영향에 대해 오래 동안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고 살아왔다. 그러나 최근의 우주학, 지구학, 지질학, 해양학, 기후학, 생물학 등의 성과를 바탕으로 인문학자들도 바다와 인간의 관계에 대해 주목하기 시작했다. 부경대학교 코어사업단의 해양인문학도 따지고 보면 바다와 인간의 관계를 교육과 연구의 대상으로 삼는 것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바다의 무늬(海文)와 인간의 무늬(人文)의 상호작용을 문제 삼는다.

바다의 물리적 운동이 인류의 사회경제와 문화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던 것은 태곳적부터이다. 반면 인류가 바다의 물리적 운동을 과학적으로 이해하고 심지어 바다에 영향을 주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1. 생명의 근원

미국의 해양학자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 어머니 바다로 표현했듯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바다로부터 시작되었다. 바다는 생명의 근원이다. 바다가 없었더라면 인류는 존재할 수 없었다. 137억 년 전 우주의 역사가 시작된 이후, 태양계의 행성인 지구가 탄생한 것은 약 46억 년 전의 일이다. 지구 최초의 원핵생물은 약 35억 년 전 해저의 열수공에서 출현하여, 25억 년 전에 진핵생물로 진화하였다. 이로부터 약 15억년이 흐른 후 다세포 유기체가 나타나며, 생물이 바다에서 육지로 이동할 수 있었던 것은 약 4 7500만 년 전이었다.

생명체가 바다에서 육지로 이동하는 과정은 양서류-파충류-포유류의 출현과 맥을 같이 한다. 육지에서 생존한 최초의 동물은 폐어(부레가 폐로 변형되어 공기 호흡을 하는 물고기)와 같았을 것이다. 페어는 생식하기 위해 물로 되돌아와야 했다. 그러나 양서류는 곧바로 진화했다. 이어서 악어 혹은 공룡과 같은 파충류가 출현했다. 파충류는 물에서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생존할 수 있도록 크고 튼튼한 알을 낳았다. 그 이후 2 5000만 년 전쯤, 최초의 포유류가 지구상에 나타나는데, 새와 비슷하게 닮은 일종의 파충류에서 진화했다. 포유류는 온혈이었고 털로 덥혀있으며 알을 낳지 않는다.

포유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한 것은 20-10만 년 전쯤이었고 현생인류의 조상이 아프리카대륙에서 각 대륙으로 이동하기 시작한 것이 7만 년 전이었다. 인류가 농경사회로 접어든 것은 1만 년 전부터이다. 이렇듯 바다는 인류를 포함한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의 어머니다.

2. 지구를 둘러싼 바다와 해양지각

지구 표면의 70% 이상은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바다는 오대양(태평양, 대서양, 인도양, 북극해, 남극해)과 작은 바다들에 의해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렇다면 바다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지구의 크고 작은 바다들의 기원에 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하나는 바다에 공급되는 물이 지구 내부에서 나오며, 화산 활동을 통해 바다가 만들어졌다는 견해다. 또 하나는 이런 내부론을 보완하면서 나온 외부론이다. 여기에 따르면 미행성체가 원시 지구에 충돌할 때 방출된 휘발 성분(수증기, 이산화탄소 등)으로 바다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바다는 대륙과 아주 흡사하게 끊임없이 진화하는 지형이다. 바다의 운동은 일반적으로 판구조론(plate tectonics)에 의해 설명된다. 이 활동과정은 지구의 지각 분열과 운동에서 비롯된다. 2 5000만 년 전 모든 대륙은 판게아(Pangaea)로 알려진 거대한 하나의 덩어리로 합쳐져 있었다. 이러한 초대륙(supercontinent) 주위의 물이 뒤에 태평양으로 알려지게 되는 바다를 만들었다. 2억 년 전 무렵 판게아가 따로 쪼개져서 새로운 두 개의 대륙이 나타나는데, 북반구의 것을 로라시아(Laurasia)라 하고 남반구의 것을 곤드와나(Gondwana)라고 한다. 이 두 개의 대륙들이 다음 5000만년 동안에 걸쳐 계속 분리되면서, 공룡시대 즉 쥐라기 말기 동안에는 중앙 대서양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남대서양은, 남아메리카 대륙과 아프리카 대륙이 다시 떨어져 벌어지면서 약 1 3500만 년 전 무렵에 등장하였다. 북대서양과 남대서양은 1억 년 전 직후에 연결되었다. 마지막으로 등장한 큰 바다는 인도양으로, 6000만 년 전 무렵에 등장하였다. 마지막으로 창조된 바다는 약 2000만 년 전에 등장한 홍해였는데, 아라비아 반도가 아프리카 대륙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면서 등장하였다.

이처럼 지구상의 대륙들이 서로 모이고 분리되면서 끊임없이 그 모습과 위치를 바꾸어왔던 아유는 두 가지 유형의 지각 분열과 운동으로 인해 판 위에 놓인 대륙이 이동하기 때문이다. 두 가지 유형의 지각 중 하나는 우리가 걸어 다니는 땅인 대륙지각이고 나머지 하나는 바다 밑에 있는 해양지각이다. 일반적으로 화강암으로 구성된 대륙지각보다 현무암으로 구성된 해양지각이 무겁다. 두 유형이 부딪힐 경우 보다 무거운 해양 지각이 대륙 지각 밑으로 들어간다. 그러면 해양지각이 대륙지각을 으스러뜨린다. 엄청난 마찰과 높은 열이 발생하면서, 대륙지각의 일부가 녹아버리고 사슬형태의 산맥을 쳐올리게 된다. 이것이 안데스산맥이 형성된 과정이다. 또한 대륙지각의 부분들이 충돌할 때도 산맥들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대륙지각의 양쪽 부분이 동일한 밀도를 가지고 있을 때에는 서로 밑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대신에 그들은 부서지면서 거대한 산맥을 형성한다. 이것이 인도가 아시아 대륙과 충돌했던 5000만 년 전에 히말라야산맥이 형성된 과정이다.

이와는 달리 가끔 두 개의 지각이 서로를 지나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도 한다. 마찰이 두 개의 지각을 끌어당기지만, 압력이 증가하다가 두 개의 지각이 갑자기 어긋난다. 이것이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산아드레아스 단층을 따라 발생한 일이다. 바로 어긋나는 현상이 지진을 만들어낸다.

이상이 판구조론의 기본적인 아이디어다. 판구조론은 산맥의 형성 경위와 대륙의 이동에 대한 이유뿐만 아니라 왜 태평양의 주위를 돌며 화산과 지진의 둥근 고리가 있는지를 설명해 준다. 이 이론은 부서진 달걀깝질처럼 지구가 왜 일련의 판으로 부셔져 있는지, 그리고 이 판의 변두리에서 화산과 지진과 같은 격렬한 활동이 왜 일어나는지에 대한 이유를 해명해준다. 지구표면의 70%가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수면 밑의 해양지각의 분열과 운동이 판구조론의 핵심이다.

3. 온도조절 장치

바다는 주위의 지표면에서 열을 흡수하고 그곳으로 서서히 열을 넘겨주는 거대한 온도조절 장치 역할을 한다. 이런 역할은 지구 전체 기후에 중요한 영향을 미쳐 연안 지역과 인접 영역에 보다 시원한 여름과 보다 온난한 겨울을 제공한다. 바다, 대륙, 그리고 지구 기후 사이의 상호작용은 해류의 확립에 상당한 영향을 주며, 해류는 다시 지구 전체에 걸쳐 인간의 발전에 영향을 미쳐왔다.

인도양과 태평양 사이에서 전진과 후퇴의 기압 대진동인 남방 진동은 지상에서 가장 거대한 날씨 결정자이다. 흔히 엘니뇨라고 불리는 태평양의 반류는 아프리카와 북미의 가뭄과 홍수와 관련이 깊다. 북 대서양 진동은 대륙 러시아 중심부에서의 혹독한 겨울 날씨에 영향을 준다.

네 개의 주요 요소들이 바닷물의 흐름에 영향을 준다. 첫 번째는 바닷물의 상층부를 밀고 가는 바람이다. 두 번째는 햇빛이다. 그것은 적도 주위의 바닷물을 뜨겁게 하고 지구의 양극으로 순환시킨다. 세 번째는 바다 지구의 염분함량 차이다. 이것은 바닷물의 농도 차이를 가져온다. 통상 소금은 바닷물의 3 퍼센트 미만이지만 염분함량이 이보다 조금이라도 더 올라가면 바닷물의 농도에 영향을 주며, 바닷물의 농도는 다시 바닷물의 순환에 영향을 준다. 이런 현상은 태양과 강수량과 관계있다. 지구의 열대지대에서는 강우량이 많으며 이로 인해 바닷물의 농도가 떨어진다. 다른 한편 아열대지대들에서는 열대지대보다 비가 덜 오며 햇살로 인해 수분의 증발이 일어나 농도가 증가한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농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바닷물의 순환을 방해하며 낮으면 낮을수록 그것을 돕는다. 마지막 요소는 소위 코리올리의 힘(Coriolis force, 전향력)이다. 이 힘은 지구 자전이 가진 일탈적인 영향력을 설명한다. 코리올리의 힘은 해류의 방향과 속도에 영향을 준다.

4. 바닷길 - 사람, 상품, 문화와 종의 교환

해류와 바람은 무엇보다 인간의 경제적 주기에서 주요한 역할을 한다. 지도에서 대륙은 생기에 찬 공간으로, 반면에 바다는 그저 텅 빈 공간으로 제시된다. 말하자면 산이나 협곡과 같은 대륙에 점점이 박힌 지리적 특징들이 바다에는 묘사되지 않는다. 물론 이러한 방식은 바다를 왜곡시킨다. 크고 작은 바다는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산과 가장 깊은 해구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다 역시 운동으로 가득 차 있다. 과학자들과 최근에는 역사가들이 해류가 강과 흡사하다고 주장한다. 증기와 철도의 도입 이전에 대륙을 가로지르는 강이 탐험과 교류의 대동맥으로 기능했듯이, 해류 역시 끊임없는 풍향의 도움을 받아 범선 시대 동안 주된 연결로들을 제공해 왔다. 초기 인간 사회는 강과 바다, 대양을 통한 교역이 육상 교역보다 훨씬 더 경제적이라는 것을 인식했다.

배는 말낙타와 같은 짐 운반용 동물보다 더 많은 화물을 옮길 수 있었다. 그리고 속도도 더 빨랐다. 불행히도 난파가 빈번하게 일어났지만 배의 빠른 속도와 적재능력이 잠재적 위험을 상쇄하였다. 수백 년이 걸렸겠지만, 일단 해류와 바람에 대해 완전히 파악하면, 바다는 자주 이용하는 고속도로로 바뀌었다. 바다의 움직임을 통달하는 것은 선체 구조, 돛 형태, 항해용 계기와 관련된 기술 진보에 중요한 자극을 제공했다.

원거리 교역은 세계의 바다 연안을 따라 살고 있는 사회들에 엄청난 문화적 영향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지구적 규모의 종의 교환을 초래했다. 원거리 교역은 9세기 아프로-유라시아 권역에서 활성화되기 시작하여, 15세기 구대륙과 아메리카 권역 사이로 확장되었다. 이러한 바닷길은 16세기 아카풀코와 마닐라 사이의 태평양으로 연결되고, 17세기 노호하는 40도대(roaring forties)를 넘어 오스트랄라시아가 연결됨으로써 전 지구적 네트워크가 된다.

인간이 바다를 가로질러 항해하면서, 사람, 물자, 사상, 종교, 정보, 식물상과 동물군, 병균도 쌍방향으로 교환되었다. 지구적 규모의 바닷길의 기폭제가 되었던 구대륙과 아메리카대륙 사이의 바닷길의 활성화는 이른 바 콜럼버스의 교환(Columbian Exchange)”을 촉진시켰다. 구대륙에서 아메리카대륙으로는 감귤, 사과, 바나나, 망고, 양파, 커피, , , , 돼지, , , 염소, , 흑인노예와 이주민, 기독교, 천연두와 황열 등이 유입되었다. 아메리카대륙에서 구대륙으로는 옥수수, 토마토, 감자, 바닐라, 고무, 카카오, 담배, , 칠면조, 알파카, 라마, 핀타, 비성병 매독 등이 유입되었다. 해상교역로를 따라 이루어진 종교적 세계관들과 사상의 교류는 세계사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병균, 즉 질병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중요하였다. 세계 전역에 걸쳐 수입된 질병은 그에 대한 면역력이 없었던 토착민을 절멸시켰다.

5. 하나로 연결된 바다 지구화

1800년대 이후에는 세계 바다의 통합만이 아니라 대양 항해와 대양 사이의 연결을 촉진하게 될 새로운 기술의 발전도 일어났다. 항해 기술의 진보는 대서양과 인도양, 태평양 간에 연계를 심화시켰다. 특히 증기엔진은 바람과 조류에 대한 의존도를 줄였으며 바다를 가로지르는 데 드는 시간을 크게 줄였다. 또한 통신기술(해저케이블과 전신)의 발달과 수에즈 운하와 파나마 운하 건설을 통해 세계의 바다간의 연결 속도를 높이는 인위적인 연쇄도 이룰 수 있었다. 이러한 과학기술에 힘입어 유럽 세력들이 팽창할 수 있었고, 얼마 안 가 다른 세력의 함대들도 해양력의 증가를 확고히 하려는 시도 속에서 유럽의 함대들에 합류하였다. 그 결과 대양을 횡단하는 제국들이 나타났고 전 지구에 걸쳐 인간의 이주를 증가시킨 복잡한 바다의 모습이 창출되었다.

증기선의 등장은 철제 선체의 도입과 더불어 일련의 과학적인 혁신이 뒤따라서 가능하였다. 예를 들면 증기선의 발전에는 풀턴(Robert Fulton)의 외륜선 도입이후, 풍력과 증기를 동시에 활용하는 혼합선(hybrid ships)을 거쳐, 스크류 프로펠러(screw propeller)와 복식기관(compound engine)의 도입 등이 연속적으로 일어났다. 이로 인해 부정기선에서 정기선으로의 발전과 배송예정표의 도입과 표준시 책정의 길을 열었다.

여러 세기 동안 바다는 사람과 상품의 수송로이면서 전쟁터 역할을 하였다. 제트기가 등장할 때까지, 원양여객선은 주된 여객 운송 수단이었다. 대체로 1800년대는 자발적이든 강제적이든 대서양을 가로질러 아프리카와 유럽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그리고 태평양을 통해 아시아에서 아메리카 대륙과 오세아니아로 가는 대규모 이주가 대세였다. 그러나 제트 비행기의 등장으로 여객선 사업은 사양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여객선 사업은 크루즈 산업으로 대체되었다. 전적으로 새로운 크루즈 문화를 창조하면서 크루즈산업을 석권하는 것은 마이애미에 본사를 둔 카니발과 로열 캐리비언이었다.

1960년대 이후 사람의 운송은 항공 운송으로 옮아갔지만, 대용량 화물은 여전히 해운의 몫이다. 20세기 마지막 25년 동안 해상 운송의 특징은 이른바 컨테이너화로 압축할 수 있다. 컨테이너화는, 여행 가방에 바퀴를 다는 것과 같이, 컨테이너로 알려진 금속 상자 속에 포장 화물을 넣는 것에 불과한 단순한 과정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하나 혹은 두 개의 기본 크기로 구성된 표준화된 단위들로 조화를 이루게 되면, 이 박스들은 항만 비용이 이전 수준에 비해 극히 일부로 격감될 수 있을 정도의 수월성과 속도로 처리될 수 있었다. 적재는 단순화되었다. 이어서 컨테이너는 최소한의 교환과 작업, 혹은 인터모달리티(inter-modality)라고 불리는 과정을 통해 육지와 바다를 이동할 수 있게 된다. 컨테이너와 인터모달리티는 연쇄가 매끄럽고, 이전에 비해 빠르고, 훨씬 규칙적이며, 저렴한 비용으로 많은 양의 화물을 이동할 수 있게 만들었다. 따라서 전산화, 항공 여행, 고삐 풀린 거대한 자본의 흐름이 다음 단계의 지구적 연결성을 위한 가능성을 창조하였다면, 컨테이너는 완제품 혹은 미완제품의 수송에서 변화의 비슷한 단계를 실현시킴으로써 필수적인 연계를 가속할 수 있었다.

이렇게 시작된 컨테이너화는 항만과 선박이 컨테이너만을 위한 운반 기구와 수송에 적합하도록 디자인되도록 만들었다. 왜냐하면 컨테이너들은 운송 체인의 모든 국면들이 체계적으로 컨테이너를 취급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을 때만이 진가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수 백 만개의 컨테이너 위치의 추적, 그리고 그것들의 분배와 회수를 위한 계획을 위한 수단이 IT기술로 가능하게 되었다. 인터모달리티를 달성하기 위해서, 수송의 세 가지 다른 유형들(선박, 철도, 트럭) 사이에 규범의 표준화가 진행되어야 했다. 컨테이너화는 이른바 글로발 소싱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도난의 위험, 적하역 시간. 그리고 기타 간접비용을 줄였던 컨테이너화는 그만큼 해운 운임비를 폭락시킬 수 있었다. 이제 운임 비용은 소싱(해외 구매)과 판매에 관한 경제적인 결정에 거의 고려될 수 없을 정도로 저렴했다. 글로벌 구매의 대표적인 인용 사례는 바비 인형(Barbie doll)이다. 바비 인형의 머리카락은 일본에서, 플라스틱은 대만에서, 옷은 중국에서, 금형은 미국 또는 유럽에서 만들어지며,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및 중국에서 조립된다. 조립된 완제품들은 바다를 통해 홍콩으로 운송되었으며, 이곳에서 취합된 인형들은 최종적으로 미국으로 다시 운송되었다. 컨테이너화는 지구화의 결과이면서 동시에 지구화를 촉진시키는 역할을 했다.

6. 해양공간을 둘러싼 담론

1950년 이래 바다는 대륙들 사이에 원료와 상품을 정기적으로 나르는 단순한 수송로가 아니다. 바다에 내재하는 부의 원천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은 바다에서 활동하였지만, 수역에 대한 전면적인 독점권을 천명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해양은 자연법에 의해 만인이 공유하는 것이며, 공기와 마찬가지로 해양의 사용은 만인에게 자유롭게 개방되어있다는 공해의 개념을 처음으로 뒤흔든 것은 1494년과 1529년에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체결한 토르데시야스조약과 사라고사조약이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해양지배에 도전하는 네덜란드와 영국이 해양질서의 재편을 위해 공해의 자유를 주장하였다. 네덜란드의 후고 그로티우스(Hugo Grotius)는 몰루카 제도에서의 포르투갈의 해양공간의 지배권을 부정하기 위해 바다공간은 만인에게 자유로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네덜란드인인 코르넬리스 반 베인케르슈크(Cornelis van Bijnkershoek)는 한 세기 뒤에 바다가 자유의 영역이어야 한다는 데는 동의했지만 한 나라의 영토를 확실하게 바다로 확장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영해(領海)의 기준으로 자신이 대략 3 마일로 추산한 연안 방어 대포의 사정거리를 이용하자고 제시했다. 많은 나라들이 다소간 자유롭게 이런 해석을 받아들여 왔다.

하지만 바다의 광물자원을 발견하면서 문제가 대두되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바닷물 속의 광물자원에 대해 관심을 가져왔다. 그러나 본격적인 개발은 해분(海盆; ocean basins)에서의 석유매장층의 발견 때문이었다. 영토권 문제를 인식한 트루먼 대통령은 1945 9월 미국이 자신의 주변 대륙붕에 속한 자원을 이용할 배타적 권리를 가진다고 선언했다. 이 선언에 이어 곧 멕시코와 중앙 및 남 아메리카의 다른 나라들의 배타적 권리 선언이 뒤따랐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 명백했다. 결국 1950년대에 새로 구성된 유엔은 해양법을 보다 면밀하게 조사하였다.

문제를 복잡하게 한 것은 대양저(大洋低; ocean's floor)에서의 망간 단괴(團塊)의 위치였다. 얼마간은 대잠수함 전투방식의 개발에 도움을 받아 바다에 대한 연구가 늘어나면서, 과학자들이 대양저에 이러한 단괴들이 산재해 있음을 발견했다. 그 단괴들을 분석해보니, 다량의 망간만이 아니라 구리, , 니켈 같은 다른 광물임이 드러났다. 가장 놀라운 것은 이런 광물자원의 집중도가 대륙 어디에서보다 대양저에서 더 높다는 것을 알아낸 것이었다.

해저자원개발의 가능성이 여전히 논의되고 있는 사이에, 몇몇 신생독립국들이 서구의 산업 국가들이 이런 자원을 이용할 가능성에 대한 관심을 표명했다. 조심스런 대화가 곧 공개회의들로 이어졌다. 이런 회의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국제해양법조약(Law of the Sea Convention, 1982)이었다. 이 회의에 참석한 대표들은 영해의 폭을 12 마일로 할 것을 결정했다. 또한 연안 국가들은 상업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연안 반경 200 마일에 이르는 소위 배타적 경제수역(EEZ)도 얻었다. 대부분의 나라들이 비준한 이 조약은 세계 바다의 3분의 1이 이제 국민국가의 통제 하에 들어간 것을 의미한다.

7. 바다와 인간의 관계 역전 - 환경에 대한 관심

동물성 자원이든 광물자원이든 해양 자원의 입지와 이용은 환경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켰다. 일부 과학자들과 최근에는 일부 역사가들도 인간과 바다 사이의 관계가 역전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1900년 무렵에 인간이 크고 작은 바다를 여전히 생명과 재산에 대한 주요한 위협으로 여기고 있었다면, 지난 한 세기 동안이 지나면서 인간은 바다에 대한 주된 위협 중 하나로 등장했다.

어업은 관계 변화를 알려주는 최초의 산업 중 하나였다. 1800년대에 포경업이 수많은 고래들을 멸종 직전 상태로 몰아넣었지만, 그보다 작은 다양한 바다 생물이 유사한 충격을 겪게 되는 것은 다음 세기에 이르러서였다. 1950년경 어업은 강력한 저인망 어선을 도입했는데, 그것은 물고기를 잡는 데만이 아니라 물고기 떼의 위치를 파악하는 데도 첨단 기술을 사용했다. 이런 발전은 어획량을 증가시키는 동시에 지구 전체의 물고기 비축량을 급감시키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물고기 남획이 가져온 결과는 생태계의 먹이사슬에 장기적인 손실을 증가시켜 앞으로 여러 세대 동안 지구 전역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세계의 바다에 크게 영향을 끼치는 또 다른 요소는 해양오염이다. 화학 오염물질, 플라스틱, 오수, 농업 침출수 등이 세계의 바다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경미한 경우에, 그런 오염물질들이 먹이사슬로 들어가 결국 물고기의 소비를 통해 인간의 몸으로 돌아오게 된다. 일단 먹으면, 오염물질들은 무제한적인 세포 성장(즉 암)과 유산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최악의 경우에는 어류 전체가 하나씩 사멸하고, 그리하여 지구 전역에 걸쳐 기근이 광범위하게 퍼지는 상황이다. 또한 바다의 오염은 연안 지역을 따라 장기적인 조류 대증식에 기여하기도 한다. 주기적인 조류 대증식은 역사 전체에 걸쳐 드문 일이 아니었지만, 북해와 같은 일부 해역에서는 수면의 약 15 퍼센트를 조류가 뒤덮고 있으며, 이는 생태계의 변화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공해(open oceans)보다 폐쇄된 바다(enclosed seas)가 이러한 문제를 더 심하게 겪고 있다. 위험 물질의 운송이 환경 악화를 부채질 하고 있다. 유조선과 석유시추선들은 주된 위험의 또 다른 원천이다. 해상 유출과 사고로 석유가 끔찍한 검은 조류와 함께 수백 또는 심지어 수천 평방마일의 바다와 해변을 뒤덮어 동물을 질식사시키고 어업을 못하게 할 수 있다.

바다에 대한, 그리고 따라서 인간 생명에 대한 가장 최근의 위협은 소위 온실효과이다. 간단히 말해, 그것은 지구 대기권 내의 기온 상승을 가져오며, 이는 극지방의 빙원을 느리지만 서서히 녹이게 되고 결국 바다 수위의 상승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기온 상승이 실제로 인간이 야기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상당한 논란이 있지만, 많은 과학자들은 이제 지구 대기권 내 이산화탄소의 축적이 산업혁명 이래 화석 연료 사용의 증가와 그에 수반하여 세계의 마지막 열대다우림 보호구역에 악영향을 미치는 산림벌채 활동과 연관이 있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대기권의 이산화탄소 함량이 증가하면서 그것이 태양열을 더 많이 잡아두게 되고 결국 빙원을 녹이는 것이다.

인류 역사 초기에는 바다에서 살아가고 모험하였던 사람들을 위협하였던 것은 바다였지만 해양생태계를 위협하고 치유하는 대책을 모색하는 행위자는 인간이다. 인류로 인한 지구온난화와 생태계 침범을 특징으로 하는 현재의 지질학적인 시기, 즉 인류세(Anthropocene)는 바다아 인간의 관계 역전을 경고하고 있다. 인간과 바다 사이의 관계는 극적인 변화를 겪어왔다. 이제 인간 사회에는 바다 세계에 대한 경외감이 없는 것 같으며, 인간은 바다에 대한 주된 위협으로 빠르게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위기에 처한 것은 바다가 아니라 인간이다.

. 동양 학문론에서의 학제적 연구

서양에서는 과학혁명을 계기로 자연과학, 사회과학, 인문학의 분화와 더불어 과학의 의미가 학문 일반에서 자연과학을 지칭하는 것으로 국한되며, 과학은 학문적 방법론을 대변하게 된다. 이리하여 자연과학은 학문의 전범이 되고 그렇지 못한 사회과학과 인문학은 자연과학과 다른 학문 방법론 내지 과학적 방법론을 도입하려는 경향이 대세를 이룬다. 그 결과 오늘날의 학문은 크게 보면 자연과학, 사회과학, 인문학의 경계가 분명하게 되고, 각 학문영역의 세부 학문들간의 분화가 심화된다. 이리하여 오늘날 학문방법론은 학문들 간의 소통을 주장하는 학제적(inter-discipline), 범학적(trans-discipline) 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동양에서는 상대적으로 과학혁명의 성과와 전개에 따른 자연과학, 사회과학, 인문학의 세분화와 그에 따른 방법론의 발전보다는 수기와 치인이라는 목표에 따라 불기(不器)의 전통이 강하였으며, 서학의 접촉과 내재적인 학문론의 성숙에 따라 기()의 학문을 수렴하려는 경향이 뚜렷하였다. 말하자면 통합적 학문전통이 강하였다. 그러나 19세기 이래 서구의 서세동점(西勢東漸)에 따라 서양의 학문론이 근대 이후의 대세가 되고 대학의 학제도 서양의 대학을 모델로 보편화된다. 따라서 동양에서도 서양의 학문론이 안고 있는 과제 즉, 학문들 간의 소통이 현재 현안이 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과학혁명 이전 동양과 서양의 학문론은 자연세계와 인간세계의 연구의 상호관련성을 중시하였다. 특히 동양의 학문론에서는 자연세계와 인간세계의 연관성을 중시하였다. 예컨대 대학 3 8조는 인간세계의 학문방법론을 천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연세계와의 연관성을 강조하고 있다.

대학의 길은 명덕을 밝힘에 있고 백성을 새롭게 함에 있으며, 지선에 머무름에 있다.”(大學之道 在明明德 在新民 在止於至善)

옛날에 명덕을 천하에 밝히려는 자는 먼저 그 나라를 다스려야 하며, 나라를 다스리려 하는 자는 먼저 그 집안을 가지런히 하여야 하며, 자신의 집안을 가지런히 하려는 자는 먼저 그 몸을 닦으며, 그 몸을 닦고자 하는 자는 그 마음을 바르게 하고, 마음을 바르게 하려는 자는 그 뜻을 성실히 하며, 뜻을 성실히 하려는 자는 먼저 그 앎을 지극히 하니, 앎을 지극히 함이란 사물의 이치를 궁구함에 있다.”(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 先治其國 欲治其國者 先齊其家 欲齊其家者先修其身 欲修其身者 先正其心 欲正其心者 先誠其意 欲誠其意者 先致其知 致知在格物)

대학 8(格物 致知 誠意 正心 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에서 사물의 이치를 규명한다는 것은 자연세계에 대한 법칙을 연구한다는 의미이다.

주역 비괘의 천문을 살펴 변화를 알아내고 인문을 살펴 천하의 교화를 이룬다”(觀乎天文 以察時變 觀乎人文 以化成天下)는 말이나, 계사(繫辭) ()에 나오는 위를 올려다보고 천문을 살피고, 아래를 내려다보고 지리를 알아낸다”(仰以觀於天文 俯以察於地理)와 계사(繫辭) ()에 나오는 천도가 있고 지도가 있고 인도가 있다”(天道焉 有人道焉 有地道)는 구절은 자연세계와 인간세계의 법칙의 상호 연관성을 함축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천지인의 3재 사상과 천도지도인도의 상호관련성을 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시대의 정도전은 천지인의 상호관련성을 더욱 명확하게 요약하였다. 그는 일월성신의 천의 문이고, 산천초목은 지의 문이며, 시서예악은 인의 문인데 천은 기로, 지는 형으로, 인은 도로 말미암는다”(日月星辰 天之文也 山川草木 地之文也 詩書禮樂 人之文也 然天以氣 地以形 人則以道)(삼봉집)고 설명한다. 그는 더 나아가 문은 도를 싣는 그릇이니, 인문이라 하는 것은 그 도를 얻어 시서예악의 가르침을 천하에 밝혀, 삼광의 운행을 따르고 만물의 마땅함을 다스리면, 문이 성함에 이르러서 극에 달한다”(文者載道之器 言人文也 得其道 詩書禮樂之敎 明於天下 順三光之行 理萬物之宜 文之盛至此極矣)고 인문에 방점을 찍고 있다. 인문의 원리가 천문과 지문의 원리와 합치된다는 설명은 다름 아닌 학문의 학제성과 학문의 학제적 방법론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필자는 천지(天地)의 원리에 바다()의 원리를 더해 천지해인의 원리와 학문적 성과가 상호 작용하여 전개되는 것이 바다와 인간의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의 지향점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런 맥락에서 바다와 인간의 상호관계를 다루는 한국해양대학교 국제해양문제연구소의 해항도시 문화 교섭 연구나 부경대 코어사업단의 해양인문학이 해도(海道)와 인도(人道) 내지 인간의 무늬(人文)와의 관련성에 주목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동양의 학문론에서 천지인의 관계를 중시하면서도 해도와 인도의 관련성에 대해 그다지 주목해오지 않았던 사실을 감안하면, 해항도시 문화 교섭 연구 해양인문학은 학문 간의 칸막이를 허무는 작업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 ‘바다인문학

과학혁명 이전 서양과 동양의 학문론은 자연세계와 인간세계의 연구의 상호관련성을 중시하였다. 근대 프로젝트는 학문간의 상호소통을 단절시켰던바 오늘날 학제적 연구나 범학적 연구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은 탈근대 내지 포스트모던주의와 맥을 같이 한다.

특히 바다와 관련된 담론은 근대 프로젝트를 대체할 비전을 제시한다. 중국의 고대사상가인 노자는 최고의 선은 물(上善若水)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물은 선하여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처하므로 도에 가깝기 때문이다. 국민국가가 주도하는 동아시아 공동체의 기제로 상선약수가 언급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패권국보다는 물의 본성을 닮은 주도국을 지향하는 정치지도력의 제안은 설득력 있어 보인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낮은 물이 바다이다. 바다는 가장 낮은 물이지만 가장 큰 물이다. 왜냐하면 모든 물은 바다로 귀속되기 때문이다. 통감절요에서 우리는 유사한 문구를 찾아낼 수 있다. ()나라의 경계인이었던 이사(李斯)는 진시황에게 인재 등용의 관용을 건의하면서 강과 바다는 작은 냇물을 받아들였기에 능히 그 깊이에 도달하였다”(河海不擇細流 故能就其深)고 하였다, 그런가하면 중국의 후세 지식인들은 바다는 모든 물을 다 받아들이기에 그 너그러움이 거대하다”(海納百川 有容乃大)라는 통감절요의 문구를 전유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한 오션(ocean)이나 해양이라는 용어에서도 중국의 사례와 비슷한 의미를 찾을 수 있지만 우리말의 바다는 훨씬 간명하며 함축적이다. 모든 물을 다 받아들이기 때문에 이름이 바다인 것이다. 우리는 노자의 가르침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바다는 최고의 선이라는 상선약해(上善若海)’의 철학과 비전을 제시하는 것도 가능하리라 본다. 그렇다면 21세기의 바다는 만물의 근원이자 공생과 소통의 새로운 질서의 비전을 담고 있는 최고의 선이다. 신해양시대의 바다는 최고의 선을 추구해야 한다. 이런 비전에 서면, 진보진화론을 대체하면서 인간과 인간, 사회와 사회,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하나의 체제라는 인식 속에서 관계론적이고 유기적으로 성찰할 수 있다.

바다와 관련된 많은 학문적 요소들은 그 자체 세계와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분석틀을 제공할 수 있다. 필자는 방법론적 해항도시 연구를 통해 이런 점을 아주 일부나마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그 자체가 앞으로의 연구방향이 어디에 초점을 두어야 할지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바다와 인간의 관계를 다루는 학문은 전통적으로 인문학의 경계에 포함된다고 여겨지는 많은 요소들만이 아니라 우주학, 생명과학, 지구학, 지질학, 기후학, 해양학, 생태학 등 바다의 운동과 관련된 자연과학과의 성과를 인문학적 개념 및 범주로 재인식하고 재구성하는 작업을 통해 인간 이해와 세계 분석의 틀은 더욱 깊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이것을 추구하는 우리의 작업은 어쩌면 바다에 기초한 새로운 인문학의 제안이라는 점에서, 또 학문간의 경계를 허물고 범학문적 대화를 지향한다는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모든 학문을 받아들인다는 의미인 바다 인문학이라는 명칭을 쓸 수도 있음직하다.

맹자는 진심장구상(盡心章句上) 24장에서 바다를 관찰하는 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바다에서 물을 본 사람은 아무리 많은 물도 보잘 것 없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제대로 물을 설명하기 어렵다. 작은 물은 큰물에 비하면 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해와 달에는 밝음이 있으니 빛을 받아들이는 곳에는 반드시 비춘다. 물을 관찰하는 데 방법이 있으니 반드시 그 물결을 봐야 한다. 물의 양과 깊이에 따라서 물결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에 의하면, 바닷물의 수면이 주기적으로 높아졌다 낮아지는 조석현상은, 달이 자기보다 무거운 지구를 끌어당기지는 못하지만 바닷물은 끌어당길 수 있기 때문으로 설명된다. 달에서 가까운 쪽과 먼 쪽의 바닷물을 서로 다른 정도로 끌어당기기 때문에 파도가 출렁거린다. 바다의 푸른색은 붉은빛을 흡수해서 만들어진다. 파장이 긴 붉은색이나 노란색은 보통 수심 5m이내에서 흡수되고, 파장이 짧은 푸른색은 더 깊이 진행하여 일부는 물 입자들과 부딪혀 산란한다. 그래서 큰물인 바닷물은 더욱 파랗게 보이고, 얕은 물인 개울물은 그다지 파랗게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렇듯 해항도시 문화교섭 연구가 지향하는 방법론적 해항도시는 방법론적 국가주의를 넘는 것이며, 또한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경계를 넘는 시도이자 모든 학문의 성과를 다 받아들인다는 의미의 바다 인문학을 지향한다. 그것은 결정론적 기계론적 세계관이라기보다는 우연과 확률이 지배하는 불확실성을 강조하는 세계관이며, 모든 생명체가 그러하듯 질서정연하게 규칙적인 운동을 수행하는 정적인 체제가 아니라 불규칙하지만 유연하고 역동적인 체제로 급변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카오스적인 상태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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